금황성 적심하다 (라 쓰고 사고치다...)

2016. 2. 22. 13:08

금황성 Echeveria pulvinata
Echeveria속 / 원산지 멕시코, 페루 / 유통명 금황성, 한월(겨울의 달), 풀비나타 등

 

 

가을비가 드문드문 쏟아지던 작년 11월, 저렴이 다육을 곧잘 들여놓는 동네 꽃집 앞을 지나가다가 아래의 금황성을 데려왔다.

금사황이라고 써져있어서 혹했던 것도 있고, 가격에 비해 사이즈가 큰 것도, 꽃망울을 잔뜩 품은 것도 맘에 들었는데 집에 와서 밝은 빛 아래 한참을 들여다보니 이건 아무리 봐도 금황성. 꽃집에서 이름표를 잘못 달아줬나보다. 게다가 노숙이라 비맞고 물을 잔뜩 머금은 덕에 '건들면 톡~ 하고 터질것만' 같이 잎을 떨궈댔다.

 

 

금황성 처음 데려왔을 때 이미지
20센티 가까운 크기의 금황성. 중간께에 물을 너무 머금어서 잎이 물러진게 보인다.

 

금사황 처음 데려왔을 때 이미지
험하게 다뤘는지 잎이 많이 상했다. 다른 병이나 벌레가 없을지 걱정되었다.

 

 

물 잔뜩 먹었으면 이제 쫄쫄 굶기는 수밖에, 라는 생각으로 해 잘 드는 곳에 겨우내 방치했다. 

그런데 오며가며 볼수록 잎 떨굼이 너무 심한거다. 무르다가 떨어지는 잎이 남은 잎의 갯수를 넘어갔을때야 위기감이 들어 화분을 뒤집어보니 아니나다를까. 제대로 씻지 않은 마사로 채워져있었는지 실뿌리들이 서로 엉겨붙어있고, 석달이 넘게 물을 안줬는데도 뿌리 부근이 축축하고 냄새가 고약스러웠다. 썩어가는 중이었다. 뿌리를 정리하고 뉘어놓은채 서둘러서 해결방법을 검색했다.

 

그렇게 많이 떨군 잎 중 뭐 하나 잎꽂이가 안되는거 같더니, 이놈은 잎꽂이도 안되는 종이며, 적심도 사례가 적었다. 이미 어느정도 목질화가 진행된 금황성이라 얼만큼을 잘라낼 것인지도 고민이었다. 난 적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서 겁이 났는데, 이대로 두어도 죽을거라면 일단 뭐라도 시도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용감하게 칼을 뽑았다. 그리고 서걱서걱.

 

난생 처음 집도하는 거라, 사진을 찍을 여유조차 없었다. 

결과만이 있을 뿐.

 

 

금황성 적심 이미지
보기는 좋은 모양새인데, 뿌리없이 버틸 수 있는 몸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멈췄어야 했던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뽑아놓고 일단 일주일은 기다려줄 걸 그랬나, 그러다 이 멀쩡해보이는 잎까지도 다 떨어져버리면 어떡하지. 

고민의 연속. 선택도 나의 몫이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나의 몫이니... 살리고는 싶은데, 어휴.

 

 

금황성 적심 이미지
목질화가 진행된 줄기 단면

 

 

잘린 단면 중 일부인데, 이런 줄기에서 뿌리가 날 것 같지도 않고, 이 상태로 적심을 한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누군가 저질러놓은 사례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그래서 그 사례를 내가 만들어보려고 지금 이렇게 남기는 거지만.

 

 

금황성 적심 이미지
목질화가 진행되지 않은 줄기 단면

 

 

푸릇한 단면이 나올만큼 잘라내고 나서야 멈췄다. 뿌리가 없는데 몸체만 너무 큰 것 같아서 좀 더 나눴다.

밑동의 얼굴 둘 중에 하나라도 살아남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남아야 할텐데... 

 

 

금황성 적심 이미지

 

 

최종. 

음지에서 3일정도 말려 줄기가 아문 뒤 심었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림뿐이다.

 

초반에 노지에서 내리는 비 다 맞아가며 큰 놈이라고, 물먹은 잎이 떨어지는게 겁나서 화분을 뒤집지 않은 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데려오자마자 잎 몇개 떨구더라도 그때 뿌리를 말렸다면 지금 저 큰 몸이 다 살아남았으려나.

아픈 놈을 살린다며 잘라내는 내 모습에 스스로도 좀 잔인한가 싶었다. 산 놈을 남긴다,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