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육 잎꽂이 - 넌 이름이 뭐니? 그리니?

2016. 4. 5. 15:36

 

지난해 초 J가 퇴사하면서 작은 토분을 놓고갔다. 

 

토분이 있다고만 막연히 기억하고 있다가 '아무도 안쓰는 거 내가 쓰자' 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 가보니, 토분 안에 활동을 멈춘 쪼그마한 다육이 죽은듯이 있었다. 아마 사무실에 있는 동안 물 한 모금 바람 한 번 쐰 적이 없을거였다. 볼품없는 잎이 듬성듬성 4~5개밖에 없어 이름이 뭔지도 모르겠는 그런 다육.

 

단지 화분을 쓰려는 거였는데, 이 이름모를 다육이의 집을 뺏는 기분이 드는건 왜인지 ㅠㅠ;;; 

10센티도 안되는 줄기엔 아마도 살아남기위한 목질화가 진행되어있고 심지어 잎조차 딱딱하게 굳어 경화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냥 버리기엔 왠지 미안했다. 집에 데려와서 잎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작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상토를 담고 그 위에 올려둔 뒤 베란다 한켠에다 방치.

 

 

다육 잎꽂이
남아있던 잎 5장 + 언성이 하나 떨어져서 옆에 올려뒀다.

 

 

아무런 변화없이 시간이 흘렀다. 신기한 것은 마치 미라처럼 잎이 상하거나 죽지도 않았다는 것. 작은 잎 두개는 버틸 기력이 모자랐는지 소리없이 시들었다.

 

그리고 2016년, 입춘이 지났다.

 

 

다육 잎꽂이
좁은 플라스틱 푸딩통에서 해를 넘긴 잎꽂이. 이제야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다육 잎꽂이
넌 이름이 뭐니? 그리니?

 

 

두 놈은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었고, 다른 한 놈은 뿌리만 내밀고 있다. 처음 해본 잎꽂이 시도, 그리고 첫 성공!! 꺄호!!

다른 블로거들의 잎꽂이는 1~3개월 안에 수월하게 된다는 것만 봤는데, 이렇게 더디게도 잎꽂이에 성공할 수 있구나 싶다. 

각진 잎 모양새에 '그리니'가 아닐까 추측중이다. 힘들게 살아남았으니, 부디 마저 잘 자라줬으면.

 

주말에 우리집에서 가장 큰 화분에 서식중인 실난을 분갈이하며 상태가 괜찮은 상토가 좀 생겨서 잎꽂이는 건들지 않는게 상책이라는 걸 무시하고 흙을 갈아주었다. 둘의 얼굴은 좀 더 커졌고, 아직도 남은 한 아이는 뿌리만 허우적대고 있다. 

귀염귀염한 달걀분을 만들까, 아님 처음으로 콩분을 사볼까. 아직 좀 더 안정이 필요한 상태인데 벌써부터 김칫국 드링킹하며 설레이는 중.

 

어라, 한참 쓰고보니 오늘이 식목일이다. 어쩐지 뭔가 풀떼기를 사고싶어 근질근질 하더라니.ㅋㅋㅋ

퇴근길에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꽃시장이라도 가봐야겠다.